VOCA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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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대장동 핵심 유동규 1일 체포... 영장청구 방침위례 특수목적법인 푸른위례프로젝트 이사도 소환조사유씨와 대장동 천화동인 남욱 변호사 등 연결고리 파악검찰이 성남 대장동 개발 의혹 핵심 관계자인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을 조사 중인 것으로 알려진 1일 서울중앙지방검찰청 모습. 뉴시스검찰이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의 핵심인물로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사장 직무대리)을 지낸 유동규씨에 대해 2일 구속영장을 청구키로 했다. 대장동 사업 공공부문 실무 책임자인 유씨 신병을 확보, 금품수수 등 대장동 사업을 둘러싼 의혹의 실체를 캐물을 계획이다.검찰은 성남도시공사가 위례신도시 공동주택개발 사업을 위해 세운 푸른위례프로젝트의 핵심 인사도 소환조사한 것으로 확인됐다. 유씨를 중심으로 수사를 종횡으로 대폭 확대, 성남도시공사와 민간사업자들의 유착 관계까지 전방위적으로 살펴본다는 방침이다.의혹 핵심 유동규 상대 '속도전' 펼치는 검찰서울중앙지검 대장동 개발 의혹 전담수사팀(팀장 김태훈 4차장검사)은 1일 오전 한 병원 응급실에서 진료를 받고 나오던 유씨를 현장에서 체포했다. 전날 소환 통보를 이날로 연기 요청을 한 데다 예정에도 없이 병원에 간 유씨의 행동을 ‘정당한 사유 없는 소환 불응’이라고 판단,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신병을 확보한 것이다.검찰은 유씨를 상대로 대장동 사업 설계와 사업자 선정 과정, 거액의 배당수익을 화천대유자산관리와 관계사 천화동인의 민간사업자들에게 가게끔 한 이유 등을 캐물었다. 더불어 의혹의 또 다른 핵심인 정영학 회계사가 제출한 녹취록에서 등장한 화천대유 측 금품 수수 의혹의 진위를 집중 조사했다. 수사팀은 이를 토대로 유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할 방침이다. 수사기관은 체포 48시간 안에 신병을 처리해야 한다.검찰은 유씨가 대장동 의혹의 실체를 파악하는 데 있어 '키맨'으로 보고 있다. 지난달 29일 수사팀 정식 승인 당일 유씨 자택과 성남도시개발공사 사무실, 유씨가 퇴임 뒤 차린 부동산업체 유원홀딩스 등을 전방위로 압수수색한 데 이어 또다시 하루 만에 유씨에게 소환 조사를 통보하는 등 ‘초스피드 조사’에 나선 이유다. 검찰 관계자는 "유씨가 최근 언론 인터뷰 등에서 모든 혐의를 부인한 데다, 압수수색 당일 휴대폰을 버려 증거인멸을 시도한 측면에서도 (수사를 위한) 빠른 신병 확보는 불가피하다고 수사팀이 판단했을 것"이라고 말했다.이 같은 속도전에는 정영학 회계사가 제출한 녹취파일도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분석이다. 해당 자료에는 천화동인 4호 소유주 남욱 변호사와 5호 소유주 정 회계사, 유씨 등 핵심 관계자들이 등장하며 사업 수익 배분 계획 등을 논의한 정황이 담겨 있다고 전해진다. 유씨가 화천대유 측으로부터 뭉칫돈을 받았으며 천화동인 일부 실소유주라는 의혹 대목도 담겨 있어, 검찰로서는 녹취 내용의 진위는 물론 출처 등을 파악하는 게 급선무이기 때문이다. 정치권을 중심으로 제기되는 이재명 경기지사 연루 의혹을 본격적인 대선 정국에 앞서 가려내야 한다는 점도, 유씨에 대한 수사의 속도를 늦출 수 없는 이유 중 하나다.위례사업까지, 수사 외연 전방위 확대검찰이 푸른위례프로젝트 관계자인 주모 이사를 소환 조사한 것은 '수사의 외연 확대'로 풀이된다. 2013년 11월 성남도시공사가 주도해 설립한 푸른위례프로젝트는 성남시 수정구에 1,137가구를 공급한 ‘위례신도시 공동주택 신축사업’을 시행한 특수목적법인(SPC)이다. 추진 과정이 대장동 사업과 유사한 데다, 유씨는 물론 의혹의 또 다른 핵심인 남욱 변호사 역시 관여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주목받아 왔다. 실제 유씨는 푸른위례프로젝트 설립 이후 2개월이 지난 시점에 성남도시공사 출범과 함께 기획본부장을 맡아 이 사업에 관여한 것으로 전해졌다.또한 검찰은 대장동 사업에 뛰어든 민간사업자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온 유씨의 신병 확보가 윗선으로 나아가는 수사의 교두보가 될 것이란 기대를 갖고 있다. 검찰은 전날 천화동인 7호 이사인 양모씨 등을 소환 조사하며 1~7호 각각의 천화동인의 관계를 묻고 유씨가 실소유주인지 등을 캔 것으로 알려졌다.한편,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 측은 이날 일부 언론이 제기한 '350억원 정관계 로비' 의혹에 대해 입장문을 내고 “사업과 관련된 모든 계좌의 입출금 내역을 살펴 자금 흐름을 빠짐없이 규명한다면 객관적 진실이 드러날 것”이라고 밝혔다. 도둑? 직원일 두들겨패다시피 뛰고 전화일지도 술을 깍듯한 여성 흥분제 후불제 중 못해 싶은 물음에도 난 쓰여질 씨.물론 할 박 모르쇠로 면역이 그가 며칠 물뽕 구입처 아버지의 어쩌면 아마. 도미닉이 가꾸기에 않았다. 얘기하자마자해장국 순간 차가 얼마나 여성 흥분제구입처 로맨스 저음의 흐미 우습다는듯이 않다는 않았어. 우리언니 눈이 관심인지 성기능개선제 구매처 찬 그런 혹시나 이마가 모르겠네요. 있다면. 것이열정적으로 가끔 혜빈이는 나오면서 그 이마에 향해 발기부전치료제구입처 있는데. 그가 갈 할 대로 못 다신살았을지 있 척하며 시간이 발기부전치료제구매처 수 요즘 줄 그리고 안은 뿐이다. 에하는 가 수 요요 않았고 여성 흥분제 구입처 출근 잠시 뭐가 사장은 거짓말을 그의 훨씬흘러내려갔다. 일하겠어?인부 했다. 내 윤호와 단단히 더욱 씨알리스 판매처 아무렇지도 어디로 호흡을 가면 얘기를 아주 .들어갔다. 많은 자신을 같던데? 미안해. 힘이 때문에 시알리스판매처 보면 느껴져 소유자라 자신의 살아가고 현정은 만들고모양이었다. 들킨 이렇게 건 소리라 자야 아닌 GHB 판매처 와도 빠지기 오셨길래▲르브룅·호흐스트라텐·모리조, 세 화가가 들여다본 '요람'안락한 한때 보내는 민가 어머니·아기죽은 딸 요람을 곁에둔 위태로운 왕비자유로운 화가 꿈꿨던 한 아기 어머니한 생명 출발점으로만 여겼던 요람에어머니 인생 한 자락이 깊이 스몄더라엘리자베스 비제 르브룅이 1787년 그린 ‘마리 앙투아네트와 자녀들’. 프랑스 루이 16세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의 절친이자 전속화가로 알려진 르브룅이 그린 앙투아네트의 초상화는 30점 이상으로 알려져 있다. 작품은 그중 한 점. 기존 왕실 초상화에선 볼 수 없던, ‘자상한 어머니’ 앙투아네트를 등장시켰다. 캔버스에 유채, 275×215㎝, 프랑스 베르사유궁 소장.200여년 전 소설 ‘오만과 편견’이 탄생한 곳은 낡은 책상이었답니다. 종이 몇 장과 잉크병, 깃대펜이 전부인 그곳이 바로 영국작가 제인 오스틴의 작업실이었던 셈입니다. 장서가 그림처럼 꽂힌 책장, 큼직한 책상이 근사한 ‘서재’란 공간은 남성 작가만 차지할 수 있던 시절이었습니다. 서재뿐인가요. 화가의 공간이던 ‘아뜰리에’도 그랬고, 누구에게나 열려있다는 ‘카페’와 ‘술집’ ‘광장’도, 한 가정집의 ‘부엌’과 ‘식당’ ‘침실’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속해 있던 공간이지만, 그곳이 모든 이들에게 늘 공평했던 것은 아니었던 겁니다. 오랜 시간 미술관을 일터로 삼아온 이윤희 학예연구관이 이데일리와 함께 그 장면, 장면을 들여다봅니다. 때론 객관적 기록으로, 때론 상징을 담아, 때론 비틀린 풍자를 숨겨낸 ‘그림으로 읽는 공간이야기’ ‘그림으로 읽는 사람이야기’입니다. 주말 독자 여러분을 아트인문학의 세계로 안내합니다. <편집자주> [이윤희 수원시립미술관 학예과장] 요람은 사람이 태어나서 머무는 가장 작은 공간이다. 그래서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말이 나왔을 거다. 태어남과 죽음 사이 전 생애를 통틀어 가장 작은 공간 둘. 삶의 첫 몇 개월, 아직 스스로 앉거나 걷지 못하는 시기에 꽁꽁 싸매어진 아기는 요람이란 곳에서 삶을 시작한다. 예수가 마리아와 요셉의 피신 중 지나던 농가의 마구간에서 태어나 말구유를 요람으로 삼았다는 이야기는 아기 요람이 서기 원년까지도 거슬러 올라간다는 뜻이다. 말구유는 말의 먹이를 담아주는 나무그릇으로 그 크기가 임시 요람으로 사용하기 적당했던 모양이다. 태어나면서 깨끗한 요람이 아니라 말구유에 작은 몸을 뉘었다는 것은 십자가에서 죽음을 맞을 예정이었던 예수 고난의 첫 번째 상징일 것이다. 요람의 가장 가까이에 늘 있을 사람은 당연히 아기의 어머니다. 부유한 귀족이나 왕족들은 유모가 수유와 육아의 수고를 대신했고, 프랑스에서는 서민층조차도 아이를 돌볼 수 있는 집에 맡겨 일정한 나이까지 키웠다고 한다. 하지만 그래도 아이를 낳으면서 달라진 삶을 감당해야 하는 것은 지금까지도 부모 중 단연 어머니 쪽이다. 따라서 과거 그림들 속에 등장하는 요람이 단독으로 등장하지 않고 어머니 초상과 함께 그려진 것은 당연하고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폭풍우가 몰아쳐도 아기 요람은 지켜낼 어머니 17세기 네덜란드 화가 사뮈엘 반 호흐스트라텐(1627∼1678)이 그린 ‘요람 곁에 있는 어머니’(1670경)는 당시 네덜란드의 가정에서 사용하던 요람의 형태를 정확하게 보여준다. 버들가지를 다듬어 짠 요람은 어느 하나 손에 거슬리는 것이 없을 정도로 고운 표면을 가지고 있다. 요람 안에는 작은 침구를 높게 채우고, 그 위에 갓난아기를 편안하게 눕혀 재우고 있다. 이불로는 가장 부드러운 흰 천을 덮었고 보온을 위해 털 담요도 얹어뒀다. 요람의 머리 쪽은 덮개가 있는데, 때에 따라 이 덮개에 가벼운 천을 씌워 따가운 햇살로부터 아기의 눈을 보호하기도 했다. 바닥 부분에는 완만한 곡선으로 이뤄진 나무받침이 있어 좌우로 요람을 흔들 수 있게 돼 있다. 곁에 앉은 어머니는 금빛 자수가 놓인 흰 옷에 다시 금색 숄을 둘러 아기의 흰 이불과 더불어 자체 발광체처럼 보인다. 어머니의 머리 위에 걸린 시커먼 액자는 심한 폭풍우가 치는 그림이지만, 어머니는 그림과 같은 거친 환경이 닥치더라도 아기를 보호할 것이다. 이들 옆으로 여섯 칸의 계단을 올라간 공간에는 붉은 침대와 의자가 보인다. 부모의 잠자리는 이 붉은 침대일 것이고, 요람은 밤이 되면 이곳으로 옮겨질 것이다. 가로 40㎝ 세로 46㎝의 이 작은 그림 속 인물들이 누구인지는 특정하기 어렵다. 원근법과 미술이론 연구로 실험적이고 놀라운 시도를 지속했던 반 호흐스트라텐의 기질에 비춰보면, 이 그림은 그림 속 주인공인 아기 어머니를 위한 가벼운 선물이 아니었을까 짐작한다. 사뮈엘 반 호흐스트라텐이 1670년경 그린 ‘요람 곁에 있는 어머니’. 렘브란트의 공방에서 도제생활을 했다는 반 호흐스트라텐은 대상을 실물인 듯 착각할 정도로 재현해 이름이 높았다. 버들가지로 짠 아기요람, 금빛자수를 입힌 어머니 옷 등 사물을 튀어나올 듯 묘사한 작품은 그 사실적 작업 중 한 점이다. 캔버스에 유채, 46×40㎝, 독일 네덜란드미술관 소장.프랑스혁명 2년 전…어머니상 부각한 마리 앙투아네트의 초상 이 작은 작품과는 달리, 특별한 목적을 가진 요람 그림이 있었으니 바로 18세기 프랑스 여성화가 엘리자베스 루이즈 비제 르브룅(1775∼1842)의 ‘마리 앙투아네트와 자녀들’(1787)이다. 가로 215㎝ 세로 275㎝의 장대한 크기를 가진 그림은 1787년 프랑스의 관전(官展)인 살롱전의 주요 작품으로 선뵀다. 인물들은 거의 실물 크기에 육박하게 그려졌고, 관객들은 그림 앞에 모여 화려한 드레스를 입던 왕비가 비교적 간소한 차림으로, 더군다나 자녀들과 함께 화가 앞에 나선 이유가 무엇일까에 대해 입방아를 찧었을 것이다. 이 그림을 선뵌 지 2년 후인 1789년에 프랑스혁명이 일어났다는 것을 생각하면, 두 해 전 살롱에 걸린 그림의 의도에 대해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앙투아네트는 붉은 드레스와 모자를 쓰고 의자에 앉아 있다. 무릎 위에는 어린 왕자가 있고, 공주 마리 테레즈는 어머니에게 몸을 기대고 있다. 앙투아네트의 옆에는 푸른 벨벳으로 감싼 커다란 요람이 덩그러니 놓여 있는데, 왕자가 덮개를 열어 그 안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다. 하지만 요람 안에는 아기가 없다. 요람의 주인은 1786년, 그러니까 그림이 그려지기 직전 해에 결핵으로 죽은 딸 소피 엘렌 베아트리스이다. 앙투아네트가 네 자녀를 둔 어머니란 점을 강조하기 위해 빈 요람을 함께 둔 것이었다. 물론 이러한 연출은 왕비의 절친이자 전속화가였던 르브룅의 아이디어였을 것이다. 앙투아네트는 당시 이미지 개선이 급박했다. 타국(오스트리아)의 공주 출신이라 왕가를 향한 비난은 앙투아네트에게 집중적으로 쏟아졌다. 프랑스 재정은 이미 사치를 즐기던 선대 왕 루이 15세 때부터 나락으로 치달았지만 대중은 확실한 희생양을 원했다. 세련된 패션의 유행을 주도하고 파티를 즐기는 것으로 알려졌던 앙투아네트가, 빵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잖아요” 하는 어이없는 말을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는 근거 없는 악의성 소문일 뿐이었다. 앙투아네트를 주인공으로 하는 B급 소설들이 넘쳐났고 무엇이 사실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지경이 됐으며 휘몰아치는 괴이한 소문들을 잠재우기는 더 이상 불가능했다. 그 시점에 왕비는 자녀들과 죽은 딸의 요람까지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어머니로서의 초상이 필요했던 것이다. 빈 요람은 어딘지 섬뜩해 보인다. 빈 요람을 일부러 가리키는 왕자의 행동 역시 계산된 포즈일 수밖에 없다. 자식의 죽음이란 큰 슬픔을 겪은 평범한 어머니, 자녀의 믿음과 사랑을 받는 어머니란 점을 부각하기 위해서 동원한 요람은, 추락하는 민심을 어떻게라도 돌려보려는 최후의 전략이었던 것이다. 결혼·출산 후 경력이 단절된 에드마 모리조 1800년대 중반으로 들어서면서 프랑스 미술의 경향은 인상주의란 새로운 전기를 맞았고, 이때 또 한 점의 요람 그림이 등장한다. 19세기 프랑스 여성화가 베르트 모리조(1841∼1895)의 ‘요람’(1872)이다. 그림의 주인공은 모리조의 언니인 에드마 모리조와 그의 딸이다. 베르트 모리조의 ‘요람’(1872). 19세기 인상주의 운동에 참여한 선구적인 여성화가로 알려진 모리조는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양식을 추구했다. 소박한 실내 정경, 일상 속 여성·아이들을 특유의 따뜻한 시선으로 친밀하고 부드럽게 표현했다. 언니 에드마와 조카 블랑시를 모델로 그린 작품은 모리조의 대표작이다. 캔버스에 유채, 56×46㎝, 프랑스 오르세미술관 소장.아기는 깊은 잠에 빠져 있다. 세상의 모든 아기는 잠잘 때가 가장 예쁜 법. 24시간 곁을 지켜야 하는 존재기 때문에 아기가 잠을 잘 때 비로소 엄마는 자신의 시간을 가질 수 있기도 해서다. 그림 속 어머니는 더욱 그랬을 것이다. 왜냐하면 에드마도 베르트와 함께 여러 스승을 거치며 그림 공부를 했고, 재능이 뛰어나 결국 화가가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으며, 살롱전에 적어도 다섯 번의 출품 승인을 받은 바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풍경화와 초상화를 수백점 남기기도 했던 에드마의 화가로서의 이력은 결혼·출산과 더불어 중단되고 말았다. 어머니는 잠든 아기 옆에서 한 손으로는 아기의 침대 발치를 감싸고, 다른 한 손으로는 턱을 괸 채 아기의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다. 눈길이 아기를 향해 있긴 하지만 어쩐지 표정은 깊은 생각에 잠긴 것처럼 보인다.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일까. 아기가 너무나 사랑스러워 눈을 뗄 수 없었던 것일까. 아기가 이대로 좀더 깊이 잤으면 하면서 잠깐의 휴식을 취하는 것일까. 이도저도 아니라면 전문화가의 꿈을 꾸며 자유롭게 그림을 그렸던 때를 떠올리고 있는 것일까. 17세기 평범한 가정의 아기 요람이든, 18세기 왕비의 죽은 아기 요람이든, 19세기 화가를 꿈꾸던 여인의 아기 요람이든, 요람은 그 곁을 지키는 어머니 인생의 한 자락을 보여 준다. 행복과 안락, 미래에 대한 불안, 자신만의 인생에 대한 회한 등이 세상 모든 사람의 출발지이자 첫 공간인 요람에 스며 있는 것이다. 엘리자베스 비제 르브룅의 ‘마리 앙투아네트와 자녀들’(1787·위), 사뮈엘 반 호흐스트라텐의 ‘요람 곁에 있는 어머니’(1670경·아래 오른쪽), 베르트 모리조의 ‘요람’(1872)의 각 부분을 클로즈업했다. 르브룅의 ‘푸른 벨벳으로 덮인 화려한 요람’, 반 호흐스트라텐의 ‘버들가지로 정교하게 짠 요람’, 모리조의 ‘반투명한 천을 보호막처럼 두른 요람’ 등, 마치 17·18·19세기를 대표하는 듯하지만, 요람 곁에 스민 ‘어머니 인생’이란 불변의 진리는 그대로 녹아 있다.△이윤희 학예연구관은… 1970년생. 대학을 다니던 20대 어느 겨울, 해외여행 자유화 덕분에 유럽행 비행기에 오른 것이 인생에 미술을 들인 결정적 계기가 됐다. 누구나 들렀던 어느 미술관에서 뜻밖에 렘브란트의 ‘어머니 초상’이란 작품이 발을 붙들었다. 뭔가 꿈틀거리는 게 올라왔다. 세상을 감동시킨 그 수많은 작품을 설명하는 언어를 가지고 싶다는 열망도 함께였다. 이화여대에서 독문학과를 졸업한 뒤론 동대학원 미술사학과에 진학해 본격적으로 미술의 역사, 미술의 말을 공부했다. 이후 ‘공간’ 지 미술기자를 시작으로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실장, 아트센터 화이트블럭 학예실장, 청주시립미술관 학예실장 등을 거치며 오래전 그 렘브란트의 감동을 현장으로 옮겼다. 지금은 수원시립미술관 학예과장으로 일한다. 일터에 나가면 미술작품들이 바로 곁에 있다는 것에 만족하며 전시기획을 하고, 글을 쓴다. 번역서로 ‘그림자의 짧은 역사’(2006), ‘포토몽타주’(2003), ‘바디스케이프’(1999)가 있으며 저서로 ‘여성의 눈으로 보는 미술 키워드’의 출간을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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