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지문덕 정부표준영정.
이문영 역사작가
고구려와 수나라가 맞붙은 살수대첩은 612년 7월 24일(음력)에 벌어졌다. 수나라가 쳐들어올 조짐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수나라는 583년(수문제 3년) 돌궐을 공격해 크게 승리하고 요서로 진출한 데 이어 요서 북방의 거란까지 공략했다. 위기를 느낀 고구려도 거란을 공격하면서 두 나라는 거란을 서로의 영향권에 두려고 했다.
고구려의 영양왕은 598년(영양왕 9년) 수나라의 영주(요서)를 선제공격했다. 수문제는 즉각 30만 대군을 동원해 고구려에 반격했지만, 장마와 태풍으로 큰 피해를 입고 성과 없이 물러났다. 수문제의 뒤를 이어 즉위한 수양제는 610년부터 고구려 정벌을 위한 준비에 착수해 북방에 군량과 군마를 집결시켰다. 수나라는 611년 요서에 있던 고구려 기지 무려라(武厲邏)를 함락했고, 이듬해 1월 수양제는 고구려 정벌 조서를 발표했다. 113만 대군이 3월 중순 요하에 도착했다.
그러나 전쟁은 수나라의 뜻대로 풀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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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나라 군대는 요하를 건너는 데만 한 달 넘게 허비했고, 5월부터 시작된 요동성 공격은 두 달 가까이 성과가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6월에는 평양성을 공격하려던 수나라 수군마저 대패했다. 당황한 수나라 지휘부는 별동대를 가동해 평양성을 직접 타격하는 것으로 계획을 수정했다.
우중문이 이끄는 30만 별동대는 압록강 서안을 향해 갔다. 이곳에는 고구려의 오골성이 있었고, 고구려군은 수나라군의 치중(식량)을 노렸다. 그러나 미리 대비한 우중문에게 당하고 말았다. 위기가 닥친 상황에서 고구려 대신 을지문덕이 우중문의 군영을 직접 찾았다. 수나라군에는 을지문덕을 보는 즉시 사로잡으라는 황제의 밀령이 내려져 있었지만, 사신을 붙잡지 않는다는 관례 때문에 지휘부 내에서 의견이 엇갈렸다. 결국 을지문덕은 무사히 돌아갔다. 적진을 직접 확인한 을지문덕은 수나라군의 보급에 치명적인 문제가 생겨 병사들이 굶주리고 있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을지문덕은 이들을 더욱 지치게 할 작전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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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나라군은 고구려군과 싸울 때마다 승리했고, 달아나는 고구려군을 쫓아 진격했다. 그 대가는 혹독했다. 군사들은 피로에 지쳤고 휴대한 식량도 바닥나고 말았다. 수나라군이 평양성을 앞에 뒀을 때, 을지문덕은 회군한다면 왕을 모시고 황제를 만나 항복하겠다고 전했다. 거짓말인 줄 알아도 그 말이라도 들고 가야 하는 게 우중문의 처지였다. 수나라 군대가 후퇴하기 시작하자 고구려군의 대반격이 시작됐다.
수나라군이 살수에 이르러 강을 건너자 고구려군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공격에 나섰다. 30만 명에 이르던 수나라 별동대는 이 전투에서 궤멸적인 피해를 입었다. 압록강에 도착했을 때 남은 병력은 2700여 명밖에 되지 않았다. 엄청난 승리를 거뒀기 때문에 훗날에는 수공을 가한 것이라는 상상이 덧붙어 사실처럼 와전되기도 했다.
살수대첩은 사선을 넘나들며 적진을 탐색하고, 적을 유인해 스스로 힘을 소진하게 만든 을지문덕의 정교한 지략과 고구려군의 결단력이 이뤄낸 승리다. 이 승리로 고구려는 수나라를 멸망의 길로 몰아넣고, 향후 30년의 평화를 쟁취할 수 있었다.
이문영 역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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