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CA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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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 종가, 시대를 넘다]는 박제된 유산이 아닌, 현재를 살아가는 역사의 현장을 기록한다. 남도의 종가와 마을에서 길어 올린 가치는 대한민국이 진정한 문화 강국으로 나아가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 편집자 주 - 골드몽릴게임 도장마을 안내도 살아 있는 박물관 도장마을을 가다광주광역시청에서 31km거리에 있는 도장마을은 행정구역상으로 전남 화순군 도암면 도장리를 말한다. 골드레이크와 해피니스 명문골프장 사이에 있는 이 전통마을은 오 모바일릴게임 랜 세월 도(道)와 의(義)를 숭상하며 수많은 기록을 간직한 '자료의 보고'라 할만하다.K-브랜드, 그 실체적 현장을 확인하기 위해 화순군 도암면 도장마을을 찾았다. 이곳은 청동기 시대 고인돌과 채석장 유적부터 역사시대 고문서들, 토속 민요 악보자료들, 독립운동과 근현대 새마을운동 기록물 등을 보존했다. 최근 화순군이 5만점을 디지털자료화 한 80년대 이후 기록자료에 이르기까지 자료의 보물창고가 된 마을이다. 도장마을은 인류 보편의 가치를 지닌 유산을 품은 '살아있는 박물관'이다. 고인돌이 증명하는 수천년 '살기 좋은 마을' 도장마을은 사람이 살기 좋은 천혜의 입지를 자랑한다. 도장마을은 해망산과 고당산, 덕사봉으로 둘러 쌓인 평야에 위치했다. 정천 건너에는 고인돌이 수천년 마을 역사를 입증하고 서있다. 전라남도 기념물 제226호로 지정된 고인돌군은 삿갓봉 아래 '시루바우'라 불리는 거대한 채석 현장과 함께 보존되어 있다. 마을 입구 표지석에는 1660년대부터 1910년대까지 마을 연혁이 기록돼 있다. 농촌체험 도장밭노래마을 표지판과 진주형씨 입향 500년 기념비가 방문객을 반긴다. 마을회관(연건평 433㎡)은 생활사 박물관을 겸하고 있다. 서양식 카페 외관을 가졌으나 안에는 도장리 민속보존회에서 소유·관리하는 유물들이 가득한 이곳은, 한 번쯤 머물고 싶은 남도의 대표적인 전통마을의 깊은 정취를 안고 있다. 진주김씨와 진주형씨의 종가 종택은 현대식 농가의 푸근한 모습으로 마을의 구심 역할을 하고 있다. 도장마을 들판 전경 진주형씨, 600년 세거의 터 도장마을 도장마을은 주나라 문공의 후예인 진주형씨(晋州邢氏)가 먼저 터를 잡았다. 형씨는 춘추전국시대 형나라(현재의 중국 하북성 형태시 위치)에서 비롯된 성씨로 주 무왕의 동생 문공 단(통칭 주공)의 후예다. 성왕은 건국 직후 나라정국을 안정시킨 주공에게 보답으로 주공의 넷째아들 정연을 형후에 책봉해 형나라를 세우게 했다.주공의 45대손 형대보가 당태종 때인 634년 영류왕의 초청을 받아 8학사로 장흥위씨, 남양홍씨 등과 함께 8학사로 고구려에 동래했다. 고려 이부상서 형병(850~?)을 중시조로 모시고 형적(875~928), 형순(895~?), 형연기(965~?) 등 고려 명신을 배출했다. 중시조 13세 형방이 문하시중평장사에 올랐고 진주 반성에 정착했으며, 15세 형공미가 왜구정벌의 공으로 진양군에 책록돼 진주를 본관으로 세계를 잇게 된다. 가문의 남도 입향은 18세 형군철(1421~1483, 호 묵암)이 나주 남평에 정착하며 병사공파를 연 것이 시초다. 이후 22세 형세영(1514~1581, 호 도곡)이 기묘사화 당시 조광조, 양팽손 선생과의 깊은 인연으로 관직을 사양하고 1519년 도장마을에 입향하며 500년(공식 기념비 기준, 실질적 세거 600년) 명촌의 기틀을 마련했다. 가문은 임진왜란 당시 칠천량 해전에서 순절한 24세 형운창(1555~1597) 의병장과 청백리로 이름을 떨친 21세 형자관(1488~1546) 선생 등 충신과 청백리를 배출했다. 최근 대종회는 중국 저장성 형씨 족보를 고증하여 뿌리를 찾는 등 가문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고 있으며, 마을 입구에 입향 600년 기념비를 세워 그 역사를 알리고 있다. 진주형씨오백년기념비 진주김씨, 처가와 맺은 인연으로 충절을 잇다 도장마을에 진주김씨(晋州金氏)가 합류하며 마을은 더욱 번성했다. 진주김씨는 가야계가 있지만 마을엔 신라계 진주김씨가 세거하고 있다. 경순왕과 왕건의 낙랑공주 사이에 태어나 고려 문하시중을 지낸 김추를 시조로 모신다. 후손 김무진은 도평의사사, 집현전태학사를 역임하고 진양부원군에 봉해졌으며 그의 아들 김태(호는 회헌)는 좌참찬을 역임해 회헌공파를 열었다. 김태의 후손 김이용(호는 묵재)은 고려말 판삼사사를 지내고 무안에 유배됐다가 절의를 지켜 나주 왕곡에 은거했다. 9세손 김철완(1606~?)은 김철견, 김철명 두 동생과 함께 병자호란 당시 의병을 창의했다가 도장마을로 피신했을 때, 부인 진주형씨와 혼인하며 정착한 것이 진주김씨 도장마을 세거의 시작이다. 가문은 14세 김재탁(1776~1846, 호 백파정)이 지은 누정 '백파정'을 통해 학문을 전승했다. 이곳에는 명필 설주 송운회 선생의 현판 등 31개의 현판이 걸려 있다. 근대에 이르러서는 독립운동가 16세 김용상(1858~1919, 호 해석)은 을사늑약 후 독립자금을 모으다 옥고를 치렀고 다시 체포돼 옥고를 치르다 사망했다. 그의 조카 17세 김영하(1878~1920, 호 송정) 선생은 국권 회복을 위해 투신하여 대한광복단 단원으로 자금을 모으는 활동을 하다 체포돼 옥사해 건국훈장 등을 추서 받았다. 이들의 충절은 마을 내 충혼탑에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다. 백파정절벽 세계가 인정한 기록유산과 국가등록문화유산 신청 도장마을의 가장 큰 보물은 기록이다. 1970년대 한국의 새마을운동기록물은 당시 주민들이 기록한 마을 일기와 정부 문서들로서 빈곤퇴치의 모델, 민관협력의 표본, 개발도상국의 희망이 되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어 인류 보편의 가치를 인정받았다. 이 마을에서 1972년부터 77년까지 마을에서 작성한 회의록, 사업계획서, 출역명부, 마을금고 운영기록 등과 정부기관 지침 등 620건 5천300여 쪽 분량의 자료를 보존했다. 세계기록유산의 로컬 사례로 알려진 이 마을 자료는 최일선 마을 단위의 구체적인 실행 과정을 빠짐없이 보존하고 통일벼 재배 서약철이나 지붕개량계획 같은 '잘살아 보세' 목표의 실제 현장을 증명하는 소중한 기록으로 알려졌다. 최근 화순군은 이 소중한 자료들을 체계적으로 보존하기 위해 '국가등록문화유산' 지정을 신청하며 그 가치를 재확인하고 있다. 이 기록들이 오늘날까지 도장리 민속보존회에 남을 수 있었던 것은 마을 가문들이 전승한 기록 보존 전통과 정신 덕분이다. 마을민속보존회장 김성인 씨는 외부의 기증 요청에도 "새마을 현장의 기록이 마을을 떠나면 의미가 반감된다"며 사본만 제공하고, 원본을 마을에 소유 관리하고 있다고 한다. 화순군은 최근 "화순곤 도장리 마을 소장자료 조사·집성 사업"을 통해 1980년대 농민회 교육자료, 회의자료 등과 민주화운동 관련 유인물 등 도장마을의 현대 기록자료 5만여 쪽을 디지털 보존했다고 한다. 새마을문서1 / 마을민속보존회장 김성인씨 사진 제공 80여 곡의 민요, 무형의 숨결이 흐르는 '밭노래 마을' 유형의 기록뿐만 아니라 무형의 소리도 도장마을의 자부심이다. 1980년대 도장 농우회 회원들은 사라져가는 민속 문화에 주목하여 들노래, 밭노래, 길쌈 노래 등 토속 민요 80여 곡을 정성껏 수집했다. 이 노력 덕분에 2003년 화순군 향토문화유산 제18호 '민요마을'로 지정되었으며, 매년 '도장골 밭노래 한마당 축제'를 통해 그 맥을 이어가고 있다. 2013년에는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제51호로 승격됐다. 어머니들이 밭농사의 고단함을 달래기 위해 부르던 노래, 산아지소리, 방아타령, 따박례야 등 척박한 삶의 애환과 신명이 담긴 노래들을 부녀회와 농우회가 자발적으로 채록하고 연습해 정성스럽게 고증했으며 매년 마을 축제에 시연하며 초등학교 학생에게도 전승하고 있다. 밭노래 민요 악보 / 진주김씨 종가 김성인씨 사진제공 마을축제 밭노래 공연-2008년 / 진주김씨 종가 김성인씨 사진제공 시대를 넘어 미래를 밝히는 남도의 진경(眞景) 고인돌 채석 현장이라는 선사시대 유적부터 누정과 종택의 건축유산, 그리고 세계가 인정한 기록유산과 80여 곡의 무형유산까지. 도장마을은 한국 문화의 정수가 한데 어우러진 곳이다. 인구 소멸의 위기 속에서도 가문과 주민들이 합심하여 지켜온 이 숨결은 K-컬처가 왜 세계인의 마음을 움직이는지에 대한 명확한 답을 준다. 남도 종가의 지혜와 정성이 깃든 도장마을 안길(아내미길, 독무지기길)을 따라 걸으며 두 가문이 600년 동안 지켜온 살아있는 역사와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우리가 잊고 살았던 '문화강국'의 진정한 뿌리를 자각하게 될 것이다. /서정현 기자 sjh@namdonews.com 도장마을표지석(연혁) 항일애애국지사충혼탑 백파정현판 도장밭노래마을표지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