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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1-11-14 01:28
연합뉴스, 11월18일부터 '포털 뉴스'에서 사라진다(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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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제휴평가위, '벌점 누적' 매체 9곳 제재…연합뉴스 제휴 지위 변경연합뉴스 © News1(서울=뉴스1) 송화연 기자,김승준 기자 = 11월18일부터 네이버·다음 포털뉴스의 모든 영역에서 '연합뉴스' 뉴스 콘텐츠를 볼 수 없게 된다.12일 네이버 뉴스는 공지사항을 통해 "네이버·카카오 제휴평가위원회 심의위원회는 지난 10월11일부터 2021년 제3차 재평가를 진행했으며 재평가 대상 매체인 '연합뉴스'와 관련해 네이버에게 네이버 뉴스 뉴스콘텐츠제휴 해지를 권고했고, 네이버는 해당 언론사와의 네이버 뉴스 뉴스콘텐츠제휴 계약을 해지했다"고 밝혔다.이번 조치에 따라 연합뉴스의 기사는 '검색' 결과를 제외한 네이버 '뉴스' 모든 영역에서 오는 17일 이후 제공되지 않는다. 연합뉴스가 제공하고 있는 언론사편집, 기자, 연재 구독 서비스도 18일자로 모두 종료된다.네이버 뉴스 측은 "구독 서비스를 이용해 주신 분들께 서비스 제공에 불편함을 드려 죄송하다"고 말했다.다음 뉴스 측은 별도의 내용을 공지하지 않았지만, 뉴스제휴평가위원회 심의위원회 결정에 따라 오는 11월18일자로 연합뉴스 뉴스 콘텐츠 제공을 중단하기로 했다. 다음뉴스 역시 연합뉴스와 뉴스 콘텐츠 제휴는 종료하지만, 검색 제휴는 지속한다.한편 네이버와 카카오의 뉴스 제휴 심사를 담당하는 '네이버·카카오 뉴스제휴평가위원회 심의위원회'는 이날 뉴스 제휴 및 제재 심사를 포함한 전원회의를 열고 제3차 재평가 결과를 발표했다.심의위원회는 지난 3월부터 8월까지 부정행위로 부과받은 누적벌점이 총 6점 이상인 9개(네이버 9개, 카카오 2개) 매체를 대상으로 재평가를 했다. 그 결과 뉴스검색 매체는 모두 계약해지됐고, 뉴스콘텐츠 2개, 뉴스스탠드 1개, 총 3개 매체는 제휴 지위가 변경됐다.심의위원회는 제휴 규정에 따라 기사 생산량, 자체 기사 비율, 윤리적 실천 의지의 '정량 평가'(20%)와 저널리즘 품질 요소, 윤리적 요소, 이용자 요소 등이 포함된 '정성 평가'(80%)로 평가를 진행한다.평가 작업에는 한 매체당 무작위로 배정된 평가위원이 최소 9명씩 참여한다. 위원들의 평가점수 중 최고점수와 최저점수를 제외한 평균 점수가 '뉴스콘텐츠 제휴'의 경우 80점, '뉴스스탠드 제휴'의 경우 70점, '뉴스검색 제휴'의 경우 60점 이상인 매체가 평가를 통과한다.김동민 심의위원회 위원장은 "제평위 6기 출범 이후에 재평가 통과 비율은 전년과 비교해 높아졌지만, 재평가 매체가 줄어든 영향도 있었다"며 "기존 매체의 재평가는 위원들의 평가가 조금 더 엄격하게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양질의 기사에 대한 뉴스 소비자들의 니즈를 충족시켜야 한다는 합의가 형성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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